소마만 생태원
- 소마만 생태원

 
 
 
소마만 생태원 -- 청산, 벽해, 금탄, 기석을 일체로하고 삼림 커버율이 80%에 도달하기에 이곳은 공기가 시원한 천연 산소바이다.
 
소마만 이름은 명나라 말기 대장군 소자항으로부터 나타났다. 청나라 군인들이 장성을 넘어온 후 그는 신변의 사병들과 함께 세상과 차단된 작은 섬에 오게 되었으며 이곳에서 경작하고 말을 기르면서 정기와 예기를 축적하였으며 나중에 다시 청나라를 물리치고 명나라를 회복하려 하였다. 그들은 현지에서 악당들을 제거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었기에 민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후세들은 소자항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을 소마만이라고 불렀다. 현재 주차장 부근에는 음마정이 있는데 이 우물은 소자항이 보마가 물을 찾아 마시면서 발견되었으며 샘물이 시원하고 감미하며 항상 마르지 않는데 주변이 바다로 둘러싼 작은 섬에서는 신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소마만의 해식 지모는 가장 독특하며 바다가 벼랑을 부식한 역사 흔적은 천층 석벽을 구성하였다. 그중, "죽순석"은 높이 솟아 있고 "계혈석"은 온몸이 피투성이며, "설화석"은 진주를 상감한듯하며 수많은 해식 암석의 모양은 신과 모양이 겸비되어 살아있는 듯 하다. 용왕석, 군귀석, 신상석은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산책 감상하면 저도모르게 도취된다. 그윽하고 깊은 림해에 들어서면 우거진 녹음이 가려진 곳에 구불구불한 계곡이 보이며 물결은 끝없이 졸졸 흐르고 있다. 유수와 암석, 산꽃과 작은 새들은 여러가지 영기를 나타내며 삼림속의 작은 나무집, 자갈로 포설한 오솔길, 버섯석으로 쌓은 의자, 탁상들은 더위를 피할수있는 최고의 장소이다. 아름다운 음악속에서, 곳곳마다 자태가 아름다운 송백 나무, 오색 반란한 도마뱀, 기어 오르는 등나무 덩굴이 보이며 마치 세외 도원에 있는 듯 하다.
 
 
 
이곳은 독특한 풍경 뿐만 아니라, 소중한 역사 유적도 있다. 비치 동부의 한 암석에는 문자가 써있는데 문물 고고학자의 감증에 따르면 한나라 석각이라고 하며 왕망신정(王莽新政)시기에 변경을 표시하는 석각이라고 하며 현재까지 이미 2000여년이 되었다. 소마만은 자연의 세계이며 또한 커플의 세계이다. 이러한 분위기와 정조는 마치 암석에 씌어진 "해서", "산맹" 4개 큰 글자 처럼, 각각 두개의 임해 거석에 조각 되었으며 아름다운 해만에 농후하고 낭만적인 색채를 부여한다. 커플들이 드레스를 입고 즐거움과 사랑으로 넘치면서 이곳을 찾아와 촬영하는 모습을 자주 볼수 있다. 그러므로 소마만은 또한 커플만이라고도 불리운다. 또한 수많은 고객들을 흡인하여 이곳을 찾아 마음속의 말을 털어놓으며 영원히 변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관광지, 공작원:
 
대사만 부터 소마만 까지의 해빈 잔도 사이에는 신기한 조류 낙원이 있으며 이곳은 개방된 해도 공작원이다. 현재 까지 약 천마리 녹색, 남색, 흰색 공작새가 있으며 사람과 공작새가 친근하고 아름다움을 경쟁하는 듯 하다.
 
 
 
2002년에 남방으로 부터 연운항시 연도 해빈 관광 명소로 "이민한" 18마리 공작새는 섬의 공작원에서 정성껏 사양하였으며 소중한 새들은 해도의 환경에 적응하였을 뿐만아니라 이곳에서 번식하고 있다. 공작새를 분산 양식하기에 행운한 경우 소마만 명소에서 "산책"하는 공작새를 볼수 있을것이다.
 
 
 
관광지, 한나라 계역 석각:
 
우리 앞에 있는 이 마애석각은 "동련도 랑야군계역 석각"이라고하며 국보급 문물이다. 중국에서 지금까지 완벽히 보존되고 내용이 명확하고 확실한 년대 기록이 있는 유일한 한나라 계역 석각이다. 한나라의 역사, 강역 및 서예 발전사의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
 
소마만 석각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东海郡朐与琅琊郡柜为界, 因诸山以南属朐, 水以北属柜,西直况其。 朐与柜分高顶为界, 东各承无极。 始建国四年四月朔乙卯, 以使者徐州牧治所书造。” 뜻은 다음과 같다. 이곳은 동해군구현과 랑야군괴현의 분계선이며 큰산 남쪽은 구현에 속하며, 바다 북쪽은 괴현에 속하며 서쪽은 광기현까지이다. 구체적인 분계점은 구현과 괴현의 정상 최고봉을 분계선으로하며 동쪽은 끝이 없다. 시간은 왕망이 자리를 잡은후 시 건국 4년4월이며 즉 기원 12년이다. 양와두 석각의 내용은 이것과 상사하며 두 석각은 동일한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수 있다.   
소마만 계약 석각을 발견함으로서 부분적인 역사상 해결되지 못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계역 석각을 연구할때 그중 서예 역사상의 중요한 지위를 무시할 수 없다. 서안은 중국 서예가 전서로 부터 예서, 초서로 전환한 핵심적인 시기이다. 계약석각의 서풍은 초기 성속되지 못한 예서중에서 뚜렷한 전서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전서가 예서로 진화한것은 한자 발전사에서의 큰 변화이며 한자는 이때로부터 간결화, 필획화, 정형화되었다. 그러므로 연도의 계역 석각의 발견은 중국 서예 발전사를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관광지, 소마만 폭포
 
 소마만 폭포는 소마만 주차장 동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낙차는 약 50m, 넓이는 8m이다. 무더운 여름에 폭포는 고박하고 자연스러운 소마만에 시원함과 영동함을 부여한다. 현재, 소마만 폭포와 해서산맹, 삼림 목옥 등은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 드레싱 촬영시 필수적으로 선정하는 관광지이다.
 
 
 
관광지, 금성선사;
 
금성선사는 산남진해사의 하원이며 그중에는 옥불지장왕 보살을 모셨다. 랑정 동서에 각각 한개 산길과 환산 도로가 연결되었다. 랑정에서 소마만을 내려다보면 거폭의 사진을 펼쳐놓은 듯 하며 멀리 바라보면 바다와 하늘이 일색이고 구름과 물이 넘실거리며 끝이 보이지않는 곳까지 연장된다.
 
연도의 사찰은 독특한 특색이 있다. 당나라 개원7년(719년)에 신라왕의 근족자제 금교각님이 24세에 우월한 왕실 생활을 포기하고 바다를 건너 당나라에 도착하여 법을 배웠다. 역사상 기재에 따르면 김교각님은 바로 이 연도에서 등륙하였으며 이곳에서 잠간 거주하면서 선경과 같은 응유산을 유람하였으며 어촌의 민풍 민속을 고찰하였다. 그후 운하와 양자강을 통하여 안휘의 구화산에 도착하였으며 그곳에서 75년간 고행하고 화연하여 사찰을 건설하였으며 현지의 개산 조사가 되었다. 김교각님은 99세에 원적하고 3년후 개함하였을때 얼굴의 색상은 살아있을때와 같았으며 손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골격이 움질일때 금속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때 신도들은 지장 보살님이 전세하였다고 말하면서 그를 "금지장"이라고 불렀다.
 
김교각님과 응유산의 인연을 기념하기 위하여 후인들은 소마만의 산에 금성선사를 건설하였으며 진해사의 하원으로 하였다. 금성선사는 뒷측이 청산이고 앞측이 바다이며 조수 소리가 들리고 풍운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지장왕 보살님이 최초로 중화 토지를 밟은 장소이며 멀리있는 자신의 고향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관광지, 음마정:
 
소마만 생태원 주차장 부근의 음마정내에는 샘물이 있다. 어민들의 전하는데 의하면 당시 소자항 대장군이 부근의 촌민들에게 물을 쓰기 편리하기 위하여 명령하여 착굴한것이라고 한다. 샘물은 맑고 감미하며 이곳으로 부터 멀리있는 어민들도 산 두개를 넘어 이곳에서 물을 취급한다. 옛말에 따르면, 물을 마실때 물파준 사람을 잊지않는다. 어민들은 목마를 즐기는 소장군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샘물의 이름을 "음마천" 이라고 부르며 우물을 "음마정"이라고 한다.
 
 
 
관광지, 해천일색:
 
"해천일색" 석각은 소마만 북부 해변 벼랑에 조각되었으며 옆에는 "중첨정"이라는 한 정자가 있다. 이곳은 바다와 인접하고 발아래는 벼랑을 치는 흰 파도, 머리위에는 바람에 날리는 흰 구름이며 전방은 깊고 푸른 하늘과 바다가 연결되었기에 "해천일색"이라고 부른다.
 
 
 
관광지, 해서산맹:
 
전설에 의하면 "해서산맹"은 그전에 바다속에 있었으며 용궁에서 결혼 축제 전용 성지이며 이곳에서 약속하면 평생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왕모낭낭이 이 사실을 알게된 후 인간에 은혜를 부여하기 위하여 해용왕을 명령하여 이 신성한 장소를 육지로 이동시키라고 하였으며 커플들이 원만한 인연을 맺는데 사용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수많은 고객과 드레싱 촬영하는 신인들이 이 두개 암석 앞에서 기념 촬영 한다.
 
 
 
관광지, 해식지모:
 
소마만과 해빈 잔도가 지나가는 곳에는 수많은 모양이 기특한 초석이 있으며 귀신 작품 처럼 천자백태로 조각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을 지질학에서는 해식 지모라고한다. 해식은 말 그대로 파도로 인한것이며 보기에 아주 부르러운 파도는 큰 바람과 큰 비의 힘을 빌어 조수에 밀려 하루 하루, 일년 일년 지속적으로 안변의 초석을 치게되는데 십년, 백년, 천년, 만년간 끝없는 노력속에서 물로 돌을 뚫어 위대한 작품을 우리 앞에 펼쳐주고 있다.
 
 
 
전통적인 감상 방법은 형상을 주장하는것이며 이러한 기석이 어떠한 모양인가를 본다. 이곳에는 신귀 탐해, 해마 등륙, 군용 희수, 공중제비...등이 있으며 소마만의 동남쪽에는 유명한 용후궁이 있다. 매번 썰물이 나타나면 돌기된 암척이 석룡처럼 바다로 부터 솟아 나오며 산언덕으로 기어 오르는듯하며 구불구불하고 살아있는 듯 하다. 주변의 헤아릴수없이 많은 파도석들은 큰것이 맺돌같고 작은것이 주먹같으며 여러가지 모습을 가진 새우와 계들과 같다. 머리들고 올려다보면 동혈이 서로 연결되고 석와가 서로 연결되어 남방의 유명한 연자동 모습을 보이기에 그 이름을 그냥 연자동이라고 부른다. 또다른 한곳은 쇄경대라고 하는 거석이 있는데 해변에 돌기되고 층층으로 백여개 접쳐있는 모습이 경서를 쌓은 듯 하며 경건한 신도들이 감탄할 정도이다.
 
이것이 바로 대자연의 신기한 매력이다